모두가 가면을 벗는다면 줄거리
사회심리학자이자 작가, 활동가, 대학교수, 자폐인인 저자가 사회의 요구를 수용하다가 자신을 잃어버리고 고통받는 신경다양인(자폐, ADHD, 양극성 성격장애 등)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주변의 몰이해와 오해, 낙인, 오진 등으로 인해 정체성을 감추고 살다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한다. 사회 구성원이 아프다면 그 사회 또한 건강할 수 없다. 이 책은 획일적인 기준을 버리고 다양성을 포용하며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껴안을 수 있어야 개인은 물론 사회도 건강해진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왜 똑같은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 중에서도 ‘망가진’ 사람과 ‘완벽하게 정상적인’ 사람을 구분할까? 그들의 차이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째서 굳이 그들을 구분하는 걸까? 자폐인이 더 융통성 있고 사회적으로 너그러운 직장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나아가 모든 사람이 그런 혜택을 누린다면 어떻게 될까? 자폐인은 인류의 정상적인 일부이며 비자폐인과 똑같은 자질을 보일 수 있다. 그렇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자폐증이 있다. 바로 그래서 존중받고 받아들여질 자격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자폐인들이 계속 가면을 쓰고 눈앞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약물 남용, 칼로리 제한, 과도한 운동, 감정적 공의존, 나아가 사이비 종교 가입 등 파괴적이고 강박적인 대처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가면이 우리 삶에서 해온 역할을 똑바로 보고 가면을 벗기 위해 노력하려면, 가면 쓰기가 지속 불가능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우리의 안녕과 개성을 크게 희생하고 있다.
와닿았던 내용
전부 틀린 말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자폐증은 수치스럽고 인생을 망가뜨리는 질병이라고 내심 생각했으니까. 그 말을 들으면 나와 함께 학교를 다녔지만 몸놀림이 어색해서 다들 무시했던 ‘울보’ 자폐아 크리스가 떠올랐다. 텔레비전 드라마 《셜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나 《빅뱅 이론》의 셸던처럼 내성적이고 까칠한 캐릭터가 생각나기도 했다. 자폐증이라는 말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물체에 가깝게 보일 만큼 과묵하며 크고 투박한 헤드폰을 쓰지 않으면 식품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연상시켰다. 나는 심리학자였지만 자폐증에 관해서는 지극히 비속하고 뻔하고 비인간적인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자폐증 환자라면 나는 완전히 끝장난 거였다. 물론 이미 오래전부터 끝장났다고 느껴왔지만 말이다. 가면 쓰기는 자폐증만큼이나 널리 퍼진 질환이다. 가면을 쓴다는 건 단순히 억지웃음을 짓는 것 이상이며 우리가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 옷차림, 직업 선택, 인간관계, 심지어 집 안 인테리어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면을 벗으면 우리는 ‘세상에 맞추기’ 위해 선택했던 모든 것을 재검토하여 더욱 진정성 있고 긍정적인 삶을 구축해 나갈 수 있다. 차이에 좀 더 너그러워진 세상은 우리 모두에게 더욱 안전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강요받아온 삶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 자신으로 당당하게 존재하기를 선택함으로써 바로 오늘부터 그런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가면을 벗는 것은 정상적으로 보였던 신념들과 행위들을 다시 생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대중매체와 교육, 주요 경험들로 접했던 자폐증(및 기타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검토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가 원해야 한다고 들어온 삶과 실제로 원하는 삶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거의 자신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되돌아보고, 너무 요란하고 비딱하고 괴상하고 호들갑스럽다고 욕을 먹었던 자신의 모습이 사실은 아무 문제없고 심지어 멋지며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다는 점을 서서히 깨달아나가야 한다. 장시간 근무와 장거리 통근, 핵가족, 고립된 ‘독립성’에 부적합한 신경 유형이 많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이런 생활 방식에 부적합한지도 모르지만(하루 여덟 시간 근무는 과학적으로 적합성이 증명된 관습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심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정신건강에 대한 현재의 협소한 정의를 허물고 다양한 사고와 감정, 행동 방식을 존중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사회를 보다 유연하고 차이에 너그럽게 재구성한다면 인류 전체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향상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가면 벗기는 정치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개인의 능력이나 필요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삶에 가치를 부여해야 하며, 사회를 모든 사람의 생산성을 최대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돌보기 위해 존재하는 체계로 간주해야 한다. 신경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일이 자폐인에게만 이로운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한 걸음 물러서서 삶과 가치관이 일치하는지, 우리가 하는 일과 타인에게 보이는 얼굴이 진정한 자아를 반영하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질문해 보아야 마땅하다. 개인의 고유한 필요와 장애에 맞서 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편안하고 너그러운 속도로 살아갈 수 있다. 모든 자폐인이 안전하게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세상은 특별한 관심사, 열렬한 감정, 환경적 민감성, 사회적 특이점 등 이런저런 차이가 있는 사람도 똑같이 가치 있고 온전하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만들려면 자폐인권 옹호뿐 아니라 부단한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결과는 모두에게 충분히 보람찰 것이다.
서평
2018년 데번 프라이스 교수가 처음 블로그에 자폐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의 메일함에는 “혹시 저도 자폐인인가요?”라고 묻는 이메일이 5000통 넘게 쌓였다. 그들이 의구심을 품는 이유는, 현재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이 ‘중산층, 이성애자, 남성, 백인’을 기준으로 세워졌다는 저자의 연구 결과 때문이다. 질병에도 계급이 있다. 책에 따르면 같은 자폐인이어도 사회적 소수자일수록 증상을 무시당하거나, 고통을 호소해도 ‘교활한’ 혹은 ‘공격적’이라고 취급받는다. 자폐 당사자가 여성일 경우에는 ‘여자라 너무 예민하다’며 외면당하고, 유색인일 때는 ‘위험한 인물’로 구분된다. 사회 빈곤층이거나 노인일 경우에는 진단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성별이 남성이어도 전형적인 자폐증 이미지에 들어맞지 않으면 진단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더 근본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저자는 자폐인 당사자인 자신의 사례를 비롯해 사회적 가면을 쓴 수많은 신경다양인을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하고 자폐인의 장점인 ‘집요함’을 무기로 논문, 블로그 게시물, 유튜브 동영상, 진단 검사 자료까지 닥치는 대로 샅샅이 조사했다. 이로써 자폐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어떤 ‘정상성의 가면’을 쓰고 사는지, 그 가면이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 이 한 권으로 증명해 낸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자폐인이자 트랜스젠더인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긍정하게 된 본인의 실제 사례와 주변의 다른 성공적인 예시들을 보여주고, 우리에게 덧씌워진 가면을 벗어던질 실질적인 방법을 논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는 가면 자폐인이 자신의 신경학적 특성에 솔직해지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전략을 보여주고, 신경다양성을 포용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설명할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멋진 괴짜이자 파격적인 개인으로 받아들이고 배척이나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자폐인 트랜스젠더인 저자 또한 스스로를 부정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전형적 자폐인’의 바깥에 있는 자신이 어디가 망가졌는지도 모른 채 사회적 가면 아래 자신을 숨겼던 것이다. 사회적 가면의 폐해를 인식하기도 어렵지만, 이미 인식했다 해도 이를 벗겨내기는 쉽지 않다. 왜 자폐인들은 사회가 바라는 ‘정상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할까? 이는 ‘자폐는 나쁜 것’이라는 통념과, ‘이런 나를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좌절이 가져다준 편견 때문이다. 아니, 자폐인들에게 이는 편견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미디어에서는 《빅뱅 이론》의 똘똘하고 겸손한 척하는 셸던 쿠퍼나 《릭 앤 모티》의 괴팍한 천재 릭, 《퀸즈 갬빗》의 천재 체스 선수 베스 하먼, 《굿닥터》의 유능하지만 냉정한 숀 머핀 같은 고기능 장애인, 즉 특출한 부분이 있고 비장애인들에게 ‘쓸모’가 있는 이들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대표처럼 여겨진다. 이는 자폐인 당사자와 비당사자 모두에게 ‘자폐인은 괴팍한 천재’ 또는 ‘고기능자가 아니면 쓸모없음’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한다. 역사적으로도 나치의 장애인 학살에 연루된 한스 아스퍼거는 지적 능력이 뛰어난 자폐인 남아들을 ‘가치가 높다’고 여겨 나치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지 않게끔 했다. 반면 여아이거나, 남아여도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면 죽음의 수용소로 보냈다. 오늘날에도 미국에서는 자폐증을 부모에게서 아이를 떼어놓는 끔찍한 고통이자 치료가 절실한 질환으로 간주하는 ‘오 피즘 스픽스’라는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신경다양인들은 ‘똑똑하지 않거나 고기능이 아닌 나’를 긍정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 편견들이 어떻게 신경다양인들을 옭아매는지 설명하고, 자폐는 신경질환이며 자폐인은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기존의 사회적 통념, 즉 ‘심각한 자폐인 또는 덜 심각한 자폐인’ ‘비전형적 또는 전형적’ ‘고기능 또는 저 기능’ 등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분류하는 현재의 기준에 대해서도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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